축구 :: 삼선의 시작, 아디다스는 어떻게 축구화의 전설이 됐을까? 브랜드별 역사 총정리

2026. 7. 21. 22:25취미생활/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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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축구화 브랜드 아디다스의 역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삼선 그려진 축구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요즘 축구화 매장에 가면 다양한 브랜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아디다스는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브랜드입니다.
특히 아디다스는 월드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는데요, 오늘은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슬러 형제와 두 개의 브랜드

아디다스의 시작은 1924년 독일 헤르초게나우라흐라는 작은 마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형제 아돌프(아디) 다슬러와 루돌프 다슬러가 함께 신발공장을 차렸어요.
형제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뒤 어머니의 세탁실에서 신발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작은 시작이었지만 두 사람의 손끝에서 나온 신발은 점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형제의 동업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사이가 틀어졌고, 결국 1948년 회사를 완전히 둘로 나누게 됩니다.
형 루돌프는 '푸마'를, 동생 아디는 이듬해인 1949년 자신의 이름(Adi Dassler)을 합쳐 '아디다스'를 등록했습니다. 두 형제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각각 공장을 세웠고, 이 때문에 헤르초게나우라흐는 한동안 '고개 숙인 마을'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전해집니다. 주민들이 상대방이 신은 신발을 몰래 확인하느라 고개를 숙였다는 데서 나온 이야기예요.
 

월드컵과 함께 쓴 역사

아디다스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돋움한 결정적 계기 중 하나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입니다.
당시 서독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헝가리에 3대8로 대패했지만, 결승에서 다시 만난 헝가리를 3대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극적인 반전은 '베른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어요.
이 우승의 숨은 공신 중 하나가 바로 아디 다슬러가 개발한 '스크루 스터드(탈부착형 스터드)' 축구화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승전 날 비가 내려 그라운드가 진흙탕이 됐는데, 서독 선수들은 상황에 맞게 스터드를 갈아 끼우며 안정적으로 뛸 수 있었다고 해요.
이 사건을 계기로 아디다스는 축구화 브랜드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이후 유럽 축구계 전반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또 하나의 상징적인 순간이 있었습니다. 아디다스가 처음으로 월드컵 공인구를 공급했는데, 그 이름이 바로 '텔스타'였습니다.
텔스타는 검은색 정오각형 12개와 흰색 정육각형 20개를 이어붙인 디자인으로, '텔레비전(television)'과 '별(star)'을 합친 이름답게 흑백 중계 화면에서도 공이 잘 보이도록 고안됐다고 합니다. 이 디자인은 오늘날까지도 '축구공'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어요.
 

알아두면 좋은 정보

아디다스는 1979년 '코파 문디알'이라는 축구화를 선보였는데, 이 모델은 지금까지도 많은 선수와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선(3-Stripes) 로고도 아디다스를 상징하는 요소인데, 처음에는 신발의 내구성을 보강하기 위한 실용적 디자인에서 출발했다가 이후 브랜드를 대표하는 상표로 자리잡았다고 전해집니다.
참고로 형제가 갈라선 이야기는 지금도 유명한데, 두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화해하지 못했고 묘지도 마을 양쪽 끝에 따로 안장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깊었던 갈등이 오늘날 두 글로벌 브랜드를 만든 셈이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죠.
이후로도 아디다스는 매 월드컵마다 새로운 공인구를 선보이며 축구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브랜드 하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기술, 사람, 그리고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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